남도의병 역사공원 왜 나주인가 ? (1)
- 등록일 2020.06.26 18:18
- 조회수 126
- 등록자 차진희
(전남일보 2020.6.15일자)
의병정신으로 남도 상생발전의 미래가치를 만들어 가자
최일(남도의병역사공원나주유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동신대 총장)
동신대학교는 의향 나주의 상징이자 진산인 금성산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중기 호남의 대학자인 곤재 정개청 선생이 인재 양성에 뜻을 두고 대안학사를 세웠던 곳이며, 한국 의병 정신의 대명사인 건재 김천일 의병장을 배향한 정렬사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대학에서는 나주역사 강좌와 학술행사를 개최하여 학생들이 전라도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키우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전승하는 것은 역사를 과거의 일로 묻어버리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데 교훈으로 삼아 희망과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전라남도가 남도 의병정신의 역사적 의의에 주목하여 올바른 전승과 관광자원화를 위한 남도의병역사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는데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며 성공적인 추진을 기원한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낸 의병은 의로움과 주인 정신의 상징이다. 전라도는 임진왜란 이후 한말에 이르는 난세에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의병활동으로 한국 의병 정신을 선도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최초의 근왕의병으로서 서울을 탈환하고 진주성 전투로 호남을 지켜낸 나주의 김천일 의병진의 위상은 남도를 넘어 한국 의병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나주가 호남 의병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영산강에서 찾을 수 있다. 에 따르면 7년간의 임진왜란을 지탱해준 힘은 나주평야의 곡식이었으며 이 곡식이 영산강 뱃길을 통해 혈관처럼 유통되었기에 영산강을‘義穀의 길’이라 표현하고 있다.
서애 유성룡 또한‘나주는 바다의 중심, 수병의 군량을 나주에 준비하라’고 할 정도로 의병 활동에 있어서 영산강과 나주 의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했다.
영산강은 또한 정유재란 때는 처절한 의병 항전의 현장이었으며, 이순신 장군이 이끌던 수군의 상징인 거북선이 발명된 곳이기도 하다.
영산강 큰 물줄기를 따라 고대 마한 문화가 꽃피었고 고려 창건의 거점이자 대외문물교류의 창구가 되었다.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남도 문화와 정신은 영산강이 모태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 전라도 천년의 탄생지 나주가 있다.
나라를 지탱할 정도의 경제력과 사림 문화가 근저에 있었기에 위기 때마다 선봉에 서서 나라와 왕을 지키고 서울 탈환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이다. 남도 사림 문화의 거점이며 전라도의 목사고을로서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주인 의식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전라도의 중심축이 광주로 옮겨간 이후 산업화 시기에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최근 빛가람혁신도시와 에너지밸리라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아 나날이 발전해 가는 나주는 이미 역사 속에 성장의 동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전공대가 개교하면 동신대학교와 함께 쌍두마차로 지역 발전을 선도하고, 나주를 찾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남도의 의병 정신을 알려 한국 의병의 세계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도의병역사공원의 조성 목적이 의병정신의 올바른 전승과 관광 자원화에 있는 만큼 부지선정 시 역사적 상징성과 중심성, 세계인과 후속세대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발전 가능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전라도의 탄생지이자 남도 의병의 실체적·정신적 산실인 나주가 최적지라는 사실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1592년 5월 16일. 왕마저 떠나고 비어버린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금성관 앞에 모였던 김천일 의병장과 의병들의 비장함과 의(義)로움을 생각해본다. 전라남도가 향토를 넘어 나라를 지켜낸 주역이었음을 교과서에 기록하여 후세에 올바로 전승하고 후세에까지 구국정신의 가치를 널리 기릴 수 있도록 멋진 남도의병역사공원이 조성되기를 기대해본다.
- 최종업데이트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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