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병 역사공원 왜 나주인가 ? (3)
- 등록일 2020.06.26 18:25
- 조회수 148
- 등록자 차진희
(광남일보, 2020년 6월22일자)
남도의병역사공원! 왜 나주로 와야 하는가?
양성현 작가
남도의병역사공원 전라남도 유치 추진 소식이 반갑기만 하다. 그렇다면 그 위치는 어디로 해야 할까? 의병의 역사책 을 쓴 작가의 답은 “나주로 유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나주”여야 할까? 그 대답은 분명하다. 나주는 “조선 의병사(朝鮮 義兵史)의 출발지이고-관광으로 이끌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찾아가 보면 ‘나주’라는 답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1592년 선조 25년 7월 20일)에 따르면 건재 김천일이 ‘창의사(倡義使)’ 칭호를 받는다. 임진왜란 발발 석 달 만의 일이다. ‘창의사’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최초로 거의한(의병을 일으킨) 사람을 높여 부른 호칭이다.
이는 당시 조정에서의 ‘의병(義兵)’에 대한 명확한 의미 규정을 담고 있다. 향병(鄕兵)수준이었던 영남의 곽재우와는 결이 다른 의병으로 김천일을 높게 대우한 것이다.
실제 창의의병은 향병에 머물렀던 영남지역의 의병과는 다른 궤적을 남겼다. 우선 창의의병은 수적으로도 압도할만했다. 명실상부한 전라도 회맹군(會盟軍, 연합의병)이었다. 나주와 인근지역은 물론 지금의 전북지역 인사들도 대거 참여한다. 나주출신 김천일-양산숙이 조선 의병사에서 중대한 시발점을 만든다.
게다가 나주 창의의병은 의병 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 나주에서 출발한 김천일-양산숙의 창의의병은 고경명 의병대, 그리고 이어 임계영의 전라좌의병, 최경회의 전라우의병, 김경수의 남문창의의병, 적개의병, 김덕령 의병군으로 이어진다. 이는 임진왜란 호남 의로움의 맥락을 만든다. 창의의병의 역사가 조선의병사(朝鮮義兵史) 그 자체가 된다.
창의의병은 ‘향토방위’가 아닌 ‘한양수복’을 목표로 한다. 향병이 아닌 진정한 의병을 표방한 것이다. 이들은 서울로 향한다. 서울을 되찾은 뒤에는 “순순히 왜구를 돌려보낼 수 없다”며 영남 한복판인 ‘진주성’으로 간다. 2차 진주성전투는 김천일 등이 중심이 된 호남의병의 전투였다. 참전 전사자 76.4%가 호남의병이었다. 이들이 조선의 의병사를 새로 쓴 것이다.
게다가 나주는 의병을 키운 ‘빛나는 고장’이었다. 주목할 인물이 나주인 송천 양응정(1519-1581)이다. 그는 나주에서 의를 가르쳤고, 실천했던 의병의 선각자다. 경상도 의로움을 대표하는 남명 조식(1501-1572)에 견주어도 우뚝 설만한 호남의 의로움의 상징이 송천이다.
그는 실천으로 보여줬다. 역사의 고비마다 불의에 항거했던 호남의병사에 송천 사상과 실천은 도도한 물결이 된다. 그의 제자 등 50여명이 ‘양응정 사단’을 이뤄 의병으로 나선다.
일휴당 최경회, 죽천 박광전, 동애 안중묵, 호우의곡장 김덕우, 삼천 최경운, 죽계 최경장 등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은 의병장이 그의 제자다. 게다가 삼도순변사 신립, 녹도만호 정운 역시 송천의 제자였고, 권율도 송천에게 배웠다. 또 사위 김광운, 외손자 청계 김두남, 손녀사위 습정 임환, 사돈이자 후배인 제봉 고경명, 회재 박광옥, 임계영, 문위세, 준봉 고종후, 학봉 고인후, 유온, 해광 송제민, 유경지, 외사촌 김인갑 김의갑 형제, 중봉 조헌, 송암 양대박, 그리고 아들 양산숙-양산룡까지 송천의 영향을 받은 인사들이 모두 의병으로 활약한다.
앞서 1555년 을묘왜변 때 송천 양응정으로부터 “의병으로 출장하라”는 편지를 받은 양달사 4형제가 의병으로 나서고, 송천의 제자인 고죽 최경창과 옥봉 백광훈이 전쟁 현장에 나서 퉁수를 불어 적에 맞서고, 종군시를 남긴다.
의로움은 이어진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출발점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도 나주이다. 나주학생독립운동으로부터 들불처럼 일어나 전국적인 학생 항일운동에 불을 지폈다.
“왜 남도의병역사공원이, 나주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의맥(義脈)으로 연결해야 한다. ‘대를 이은 의로움의 맥’은 호남의병의 돋보이는 부분이다.
송천으로부터 배운 이들이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나섰고, 그의 아들 양산숙과 양산룡, 병자호란 의병장 손자 양만용과 양원용, 증손자 양지남으로, 그리고 300년 뒤 지강 양한묵으로 의로움이 이어진다. 김천일-김상건 부자의 의로움은 또 어떤가?
녹천 고광순 한말의병장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제봉 고경명 선생의 둘째아들인 학봉 고인후의 11대 종손이다. 300여년의 시간을 두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에 나선 후손의 의기(義氣)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죽천 박광전 가의 4대에 걸친 의병활동과 제자, 처남 등의 의로움도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의로움이다. 문위세-문홍개家는 또 어떤가?
이를 ‘의맥지도’로 만들어야 한다. ‘의맥지도’를 만들 가장 좋은 곳이 나주이다. 호남의병들을 망라해 지도로 만들 수 있다. 이는 영남에 없는 진정한 의로움의 표상이다.
게다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또 있다. 기왕 ‘남도의병역사공원’을 만든다면 “성공하는 남도의병역사공원”이 되어야 한다. 나주는 관광객을 이끌기 쉽다. 광주와도 가깝고 서울 등지의 사람들을 이끌 교통의 요지가 나주다. 또한 빛가람혁신도시와 한전공대 개교로 세계인들이 찾게 될 ‘성공하는 남도의병역사공원’이 나주인 셈이다.
- 최종업데이트 2026.08.27
보내주신 소중한 의견은 페이지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