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9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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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영산강변의 회진리, 죽산리, 청림산(189.1m) 동남쪽의 문동리, 청림산의 서쪽
동당리에 이어 북쪽으로 이동하여 송촌리 송정마을에 도착하면 청림산이 남산이 되고
밤산(105.8m)이 북산이 됩니다. 송정마을은 앞쪽 남쪽 가까이 크나큰 송정제 저수지가 있고
북쪽 뒷산은 밤산이니 아쉬운대로 배산임수 지형이 되지요.
송촌리 송정마을의 느티나무는 가슴높이 둘레 4.3m으로서 보호수 가운데 굵은 편이지만
나무높이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닙니다. 나무높이에 비해 수관이 넓어서 어딘가 모르게
균형미가 다소 어긋나 있군요. 수관은 좌우 대칭으로 균형미를 보여 주지만 수관의 중심부가
반구형을 이루지 못해 자연스럽지 않군요.
수관의 거리만큼 뿌리가 뻗어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보호수의 뿌리는 정자 밑에서
솟구쳐 올라 언젠가 정자는 이전대상이 될 운명으로 보이는군요. 정자쪽으로 뻗은 가지는
가까스로 처마를 피했지만 그건 사람이 기술적으로 조정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예요.
송정마을 사람들은 참으로 동네에 대한 애착이 많은가 봅니다. 왜냐하면 ‘愛鄕碑(애향비)를
멋을 부린 2층 기단 위에 오석으로 세웠고 ’송정마을‘이란 작은 오석으로 된 비석도 그 옆에
설치했군요.
보호수 건너편에는 넓은 대지에 상당한 규모의 고건축물이 건축미를 자랑하는데
인동장씨비입니다. 정사각형의 건물인데도 지붕의 가운데에서는 또 솟아오른 지붕이 있어
특이합니다. 보호수 뒤편으로는 마을 광장과 팔작지붕의 송정새마을회관이 있어 인심이
넉넉한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송촌리에는 3구까지 있고 이곳 송정(松亭)마을이 3구가 됩니다. 마을 형성은 300년전에
형성되었다고 하는군요. 지명유래는 처음에 빙개라 불렀는데 후에 마을 앞에 큰 노송이 있어
그 주위에 정자를 건축했고 이름도 송정으로 바뀌었다고 하지요.
마을에는 고인돌 14기와 선돌이 있어요. 선돌은 이곳에서는 배매는 돌, 물레독이라고도
한다지요. 기타 영사재, 추원재, 신도비, 절충장군 유허비가 있습니다.
마을 북쪽으로는 철도 굴다리를 지나도 송촌리 구역인데 호남선의 철도역인 고막원역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복암사를 가기 위해 원이 설치되었는데 그게 고막원이어서 역명을
이렇게 지었답니다. 고막원역은 무안국제공항을 거쳐 가는 호남고속철도 2단계 건설사업
시점역이어서 송촌리에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의미가 크다 하겠지요.
송촌리는 고막원천을 경계로 함평군과 인접합니다. 고막천 석교는 고려후기에
가설되었는데 보물 1372호이지요. 석교는 행정구역상으로는 분명 송촌리 소속인데 ’함평
고막천 석교‘라고 통칭됩니다. 이곳 석교에서는 동학농민군이 밀물이 들었을 때 관군에 쫓겨
수백명이 희생된 역사의 현장이에요. 오늘도 축멸왜이(逐滅倭夷: 일본 침입자를 쫓아냄)를
외쳤던 동학농민군의 원혼을 위로하면서 애국과 애향으로 승화시킨 듯 보입니다.
제6장 백호 임제의 고향 다시 영산강변과 윗동네 2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