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5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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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노거수 가운데 마을에는 주로 느티나무나 팽나무가 많이 있지만,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던 향교나 조상들의 오래된 사당에는 은행나무들을 흔히 보게 됩니다. 은행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다른 특성을 갖지요.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주변 나무와는
다르게 독자적 형태로 고유한 수형을 이루며 그 나름의 운치를 자랑하지요. 은행나무는
잡다한 병충해와 비바람에 꺾이지 않고 고고한 선비같은 기상을 품고 있어요. 그래서
향교나 조상들의 사당에 주로 식재하는 나무입니다.
금성산 저편 나주 보산동에도 500년이 된 은행나무가 외딴 마을에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나주 나씨 문중의 선산 추원당 사당 마당에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한
번이라도 찾은 사람만이 상징성으로 인해 기억해주지요.
이곳 은행나무의 유래는 지금 나주 남산공원 아래 나주천변에 향토문화유산 제47호로
지정된 금호사(錦湖祠)의 배향 주인공인 나주나씨 금호공 나사침의 어머니(표해록의
저자 금남 최부의 둘째 딸)가 1556년 1월 돌아가시면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나사침은
시묘하면서 장수를 상징하는 의미로 이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지요.
나사침의 효행과 덕행은 선조실록(1568년 5월 10일)과 유희춘(1513-1577년)이
쓴 미암일기(보물 제260호)에 자세히 언급되어서 그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 줍니다.
표해록으로 유명한 최부와 이웃하여 살던 금호공의 아버지 감찰공은 금남 최부의 둘째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이분이 바로 금호공 나사침의 어머니가 됩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요. 금호공이 16세 때 어머니가 병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그어 그 피를 먹여 목숨을 구했지요. 그래서 중종 임금이 그 효행를 칭송하여 효문을 정려
하사했다지요. 그리고 기축옥사 시에는 무고를 받아 위험에 처했지만, 나사침의 효행이
만백성의 귀감이 되고 있으니 처벌불가라고 선조 임금이 명을 내려 무탈했답니다.
이렇듯 효행심이 지극한 나사침은 어머니 사후 시묘를 하면서 장수의 상징인
은행나무를 식재하고 동시에 부친의 장수를 기원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노거수
나무는 이런 사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연륜만큼이나 깊은 의미와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지요.
이를 증명하듯 금호공이 은행나무를 식재하고 시묘를 하던 중, 같은 해 11월에 부친마저
별세하자 6년 동안 시묘하게 됩니다. 그 후 금호공의 후예 3대 기간에 충효열이란 3강
덕목에 걸쳐 8개의 정려를 중종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즉, 3강인 충효열로써 무려 2명의
충(신), 2명의 효(자), 4명의 열(녀)이란 8정려를 조정으로부터 받습니다. 3대에 걸쳐
8명의 충신, 효자, 열녀가 나오기는 이 세상에서 아주 드문 일이지요. 그래서 나주 남내동
4-2번지에 그 숭고한 뜻을 기리는 삼강문이 전남도 지방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어 매년
나주나씨 문중에서는 그 뜻을 기리는 제를 올리고 있답니다.
제6장 백호 임제의 고향 다시 영산강변과 윗동네 2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