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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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를 관통하는 영산강변은 그저 너른 들판일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한국은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이고 평지라고 해도 노년기 구릉과 잔구 지역이므로
            나주에도 산지가 많습니다. 풍림리는 남동으로 길다란 법정리인데 동쪽으로는 323m의
            중봉산이 화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북으로는 영산강의 큰 줄기인 지석강변과 연접해
            있어요. 풍림리는 꾀 높은 산봉에서 흘러내린 두 개의 큰 골짜기를 갖고 있으므로 이름에

            수풀림 글자가 들어간 데서 알 수 있듯 숲정이 또는 비보림이 셋이나 있어요.
               여기에서 중심 지역은 풍림리 3구 풍강마을인데 이 마을의 느티나무(15-4-1-7) 옆에
            창해루 정자가 있어 명목의 위상이 크게 돋보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보호수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여 마을 광장을 아스팔트 포장하면서 보호수 밑둥까지 포장한 것을 두고 크게
            우려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지요.
               풍강마을은 백제시대에 마을 앞으로 큰 강이 흘렀는데 계속된 풍수해로 모래, 자갈로
            메꾸어져 그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풍강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해김씨가
            최초로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들은 그때 심었다고
            합니다.

               풍강마을  중앙에는  300살로서  둘레가  5.4m나  되어  위용과  기품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있어 마을의 자랑거리이지요. 보호수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는 남쪽 큰길
            건너편에는 37그루 노거수 군락이 있는데 느티나무, 서어나무, 팽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는
            비보림입니다.
               그뿐 아니라 지도상으로 동네 좌측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도 노령목 14그루의
            느티나무와 팽나무만으로 이루어진 숲정이가 있습니다. 도로 위아래로 줄나무를 형성한
            노령목은 찬찬히 살펴보면 가장 남쪽 끝에 있는 팽나무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 나무가 하나가 되었으니 연리목인데 동네 사람들조차 그걸 모르고 있군요.
            공식 자료에도 그저 한 그루로 집계할 뿐입니다.
               풍림리 2리는 현재 죽림마을인데 1600년대 초 강화봉씨가 최초로 정착하였다지요.
            조선시대 때 봉씨라는 효자가 모친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하여 죽순을 찾아 통곡하자
            산신이 나타나 죽순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 죽림이라 칭하였다지요.
               죽림 골짜기에 들어서면 죽림마을이 나타나는데 노령목 여섯 그루가 웅장한 비보림이
            되어 마을 품에 안겨 있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를 여태 아끼고 보호해 왔으니 마을의
            유래가 깊고 마을사람들의 사랑이 어떤지 바로 느낄 수 있어요. 유서 깊은 마을이니 비석
            등이 없을 수 없지요. 팽나무 네 그루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다툼이 없이 서로를 의지하는

            품이 아름답습니다. 이 골짜기를 끝까지 따라가면 죽림제가 나오고 죽림사 절도 있어요.




                                                          제2장 옛 남평현 일대와 공동혁신도시 주변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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