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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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평의 북방 입구 계로리에서 차례대로 동원리, 송산리, 북동리까지 탐방했으니 이제는
남으로 8km 이동하여 산호리2구인 이곳 평산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산호리에 들어서자마자 1구인 남산마을의 입구에서 ‘나대용장군가적비’를 볼 수 있지요.
체암 나대용장군의 묘지는 대도리 산기슭에 있는 금성나씨 선영에 있어요. 대도리는
보호수가 없는 곳으로 계로리에서 동원리 가는 길에 있지요.
마을 유래는 고려 성종때 거평현이 시작되면서 평산이라 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을 앞 서쪽으로 고막원천까지 광활한 산호평야가 펼쳐져
있지만 옛날에는 밀물이 드나드는 바다였다고 하는군요. 이 마을에도 예외 없이 기적비와
사은비가 있어 옛 선현의 효열과 가르침을 드러내고 있지요.
마을 형성은 15세기에 나대용장군의 둘째 아들인 나우적이 이곳으로 분가하여
정착하였다고 하며 그의 11대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는군요.
이렇게 나대용장군과 관련된 유적지가 여러 곳에 남아 있고 그의 호를 딴 체암로가
18km에 걸쳐 함평을 거쳐 노안면 삼도로까지 연결된 것은 거북선을 앞세워 백척간두의
국난을 극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명량대첩과 노량해전 승리의 수공(首功)은 오롯이 체암의 몫입니다. 충무공 이순신도
‘약무호남시무국가’라고 하여 호남인의 애국정신과 전쟁 물자 지원이 없었으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지요.
여기 팽나무는 350살로서 둘레가 4m의 정자목으로 분류되어 마을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실제로 정자목의 구실은 이름 없는 다른 나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보호수는 민가의 벽에 1m 내외로 가까이 붙어 있고 바로 앞에는 개방된 빗물
하수도도 있어 생육조건이 열악하네요. 그래도 수관은 풍성하여 도로와 민가를 두루
덮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수관은 마을 광장 건너편의 정자까지 이를 수는 없으니 민가의
시멘트 헛간이 마을 정자로 대체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팽나무의 밑동은 광장의 도로
보다 높아 우뚝 서 보일 뿐만 아니라 생육환경이 일거에 개선되니 천지간의 행운이라고
해도 무방하겠군요.
한편, 산호리 1구 남산마을의 250년 보호수 푸조나무는 마을 안쪽 동산에 자리 잡아
접근과 탐색이 곤란하여 제외합니다. 차를 끌고 마을내로 진입하면 돌려 나올 수도 없는
열악한 여건이지요. 그리고 옥당리 금옥마을의 350년 보호수 동백나무 1그루도 수세가
약합니다.
이 동백나무는 이웃 두 그루와 함께 군락을 이루지만 관리가 되지 않고 있으니
사유지인가 봅니다. 외려 인근의 소나무 다섯 그루는 지정된 노거수로서 정자를 품고
있으니 훨씬 친근하고 정겹답니다.
제3장 금성산 북쪽 호남 3대 명촌 노안면과 문평면 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