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0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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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일제시대에 고흥류씨 선산이 홍화동에 있다 하여 화동이라 하다가 일제말기에
한자를 간략화하여 화동으로 표기하였다고 합니다. ‘화동’ 지명은 꽃화를 써야 주변 모든
분위기와 완전한 조화를 이룰 터인데 왜 될화(化)를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군요. 그런데
외지에서는 류춘정의 정각인 장춘정이 전라남도 기념물 제201호로 유명하여 마을 이름을
장춘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군요.
장춘정이란 이름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은 숲과 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답니다. 입구의 장춘정 안내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1561년(명종 16)에 고흥 유씨 유충정(柳忠貞 1509~1574)이 건립하였다. 건립
연대에 관한 기록은 고봉 기대승(1527~1574)이 지은 장춘정기(藏春亭記)를 통해서
확인된다. 장춘정이란 이름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장절(四時長節)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다 하여 장춘(藏春)이라 하였다 한다.
장춘정(藏春亭)은 화동마을의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전면에는 넓은 들과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우측으로 영산강이 흐른다. 정자 주위로는 동백나무숲과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등 노거수가 울창한 수려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으며, 정자는 남동향을
바라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장춘정을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교유하였다. 면앙
송순(1493~1583), 석천 임억령(1496~1588), 원기 오상(1512~1573), 풍암 임복
(楓巖 林腹, 1521~1576) 사암 박순(1523~1589), 고봉 기대승(1527~1572), 연과
박개, 손재 박광일, 백호 임제(1549~1587), 안위(安瑋), 설봉 강백년 (1603~1681)
등이 제명을 남겼다.
유충정은 무과에 급제(1534년 중종29)하여 부안, 강진현감, 김해부사, 장흥부사,
온성부사 등의 수령을 지낸 뒤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강상(江上)에 장춘정을
지었다.
장춘정은 영산강변 신설도로가 개설되었고 바로 도로변에 있어 접근성이 개선되었으니
앞으로 잠재적인 관광자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도로변에 주차공간이 전혀
없어 위험하니 옆에 놀리고 있는 밭을 주차장으로 확보한다면 금상첨화가 되겠군요.
장춘정은 유서 깊고, 영산강변이라 풍광이 뛰어나고, 또 나무들의 기품과 재주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기반시설을 갖추면 자동차와 자전거 등을 이용하는 관광객이나
트레커들에게 관광명소가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이는 것 같군요.
신설도로 건너편의 영산강 하천부지는 널따란 대지예술공원이어서 레저용
경비행장까지 건설되었고 억새밭에는 하늘에서 바라보았을 때 땅 위에 삼족오 형상까지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쉼터이며 생태체험의 교육장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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