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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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하여 심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범죄 없는 마을, 살기 좋은 마을이 된 것은 이
            나무가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착한 심성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담 너머의 지형이 개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마을 입구를
            개머리라 불렀으며, 금성산의 줄기에서 뻗어 내려온 마을 뒷산이 기봉(起捧)하여 용이
            일어나는 형국이라는 유래에서 기룡(起龍)이라 하였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 이후 우리말

            발음은 똑같지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룡(己龍)으로 한자만 한 글자 바뀌었습니다.
            용은 상상의 동물로서 상서로운 동물이고 용상과 왕을 상징하는데 일본제국주의가 이
            마을이 용의 기운을 가진 데다가 더 나아가 용이 일어선다는 지명을 가졌으니 슬쩍 고쳐
            놓을 법도 되겠지요.
               이 귀한 굴참나무는 개인 사유지의 울타리 안쪽에 속한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그래도
            담을 쌓은 울타리는 아니고 작은 잡목으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울타리이므로 곁에 가서
            관상하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요. 큰 나무는 꾀 떨어진 곳에서도 그 기운을 느낄 수
            있고 그 수형 자체가 웅대하고 운치가 있습니다. 사유재라고 하더라도 공공재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는 태평성대이므로 사람들은 전원 속에 숨은 보호수를 찾아 자연미를 감상하고
            생태탐방을 하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이곳의 굴참나무 일대는 동학혁명 와중에 숱한
            동학군이 스러져 간 피의 격전지에 속했답니다. 총 1,027명이 희생된 2차 동학혁명의 나주
            5대 전투에는 353명 전사의 남산촌전투(1894.11.27~12.1)가 들어가는데 남산촌은
            기룡마을 이웃 마을이지요. 굴참나무는 동학혁명군의 피를 보고 자란 나무일 수도 있다고

            가정하면, 스러져 간 영혼들의 외침이 잎새에 바람으로 나부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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