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2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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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으며 조선시대 차(茶)로 유명한 초의선사가 15세에 출가한 곳이기도 합니다.
6·25전쟁 때 전소(全燒)되어 버려졌지만, 다시 아담한 산사로 중건되어 먼 지역에서
신도가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이곳의 석장승은 명물인데 장승(長丞)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수호신으로 모시던 민간신앙의 조형물입니다. 나중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와는
무관하던 장승이 사찰의 경계표시나 수호신으로 변모하여 사찰장승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되지요. 즉, 사찰장승은 절 입구에 세워 이곳부터 절집이라는 성역 표시와 함께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호법신 역할을 했어요. 전국의 다른 사찰에서도 볼 수 있는데
비근한 예는 이웃 불회사에서 만날 수 있지요. 사찰장승은 전형적인 마을 장승과 불교풍의
사천왕상 이미지가 결합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석장승은 사찰장승이면서도
마을장승을 그대로 옮겨온 사례라고 하지요. 그래서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처럼
아주 친근하면서도 인자하다는 평을 받아요.
한편, 우리나라 돌장승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 석장승은 제작연대가 1719년으로 뚜렷하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웃
불회사 석장승도 같은 시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지요.
운흥사의 거목 은행나무 ▶
◀감나무(은행나무 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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