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3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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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면에는 세 그루의 보호수와 한 그루의 천연기념물이 있는데 금곡리 용호(龍湖) 마을,
또는 용호동(龍湖洞)의 팽나무는 본 책자에서 구상중인 나주 남부권 문화생태탐방로의
공산면 마지막 나무입니다. 이 팽나무의 탐방을 마치면 다음 목표지는 최단 거리에 있는
동강면 인동리 봉골마을의 11그루 곰솔 비보림 줄나무로 향합니다.
금곡리 1구인 용호(동)마을은 원래 월비마을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은 용호마을로 흔히
불리게 되었습니다. 주변 마을길의 새로운 이름이 ‘월비길’인 점에서 옛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군요. 마을의 형성은 500년 전 의령여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마을의 당산나무는 이때 심었다고 전하지요. 당시의 당산나무는 세월따라 가버렸고
이제는 200년 수령의 팽나무가 동네의 우물터 옆에 굳건히 지키고 있어요.
마을 이름의 유래는 마을 뒷산의 이름이 용산(龍山)으로서 뛰어난 도학자가 사는
곳이라는 뜻에서 용호동(龍扈洞)이라고 했다는군요. 그런데 일제 강점기 초기에 행정구역
개편을 할 때 마을 앞에 강이 흐르고 있어 용호동이라고 한 후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강의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지요. 당시에 조그마한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면, 북쪽으로 흘러 영산강에 바로 유입되지 않고 남쪽으로 흘러 영산강 지류인
삼포강으로 일단 합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군요. 금곡리에는 5구까지 있는데 4구와 5구는
장승백이 마을로서 면의 중심지 겸 면소재지입니다. 따라서 장승백이 마을은 당연히
교육과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상업도 발달하여 1일과 6일에 재래시장인 공산장이
서기도 합니다.
서울에도 유명한 장승백이 지명이 있듯이 이곳도 같은 유래를 갖고 있어요. 옛 조상들은
이정표로 십리(十里)마다 말뚝이 있는 곳에 장승을 세웠고 마을 입구에도 장승을 세워
무사안일을 기원했어요. 장승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소원을
기원하였는데 장승이 세워져 있어 장승백이라 부르게 된 것이지요. 이곳의 장승은
일제시대에 미신퇴치 차원에서 토속신을 억제하여 사라졌다는군요. 그 대신 가까운 곳에
신사단을 만들어 천황에게 예배하도록 했답니다. 이곳 팽나무는 야산 아랫동네의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자연석으로 경계를 두르는 등 단장했지만 생육환경이 불편해 보이군요.
대나무가 울창한 뒷산 용산에서 스며든 지하수가 저지대로 흘러드는 만큼 비좁은
공간에서도 200살 보호수는 잘 자라고 있어요. 풍부한 지하수에 의한 풍성한 잎사귀는
옛날 전통농촌의 풍요를 지켜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보호수와 20m의 지근거리에 있는 마을 공동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법이 없다는군요. 그리고 예전에 마을 앞 전답이 몽리면적에 들지 않았을
때는 문전옥답에 다 물을 대고도 남았다고 자랑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물에 많은 돈을 들여
석조기둥과 지붕을 근사하게 설치해 두고 양수기 펌프까지 놓여 있군요.
제5장 천연기념물이 있는 영산강변 하류 아랫동네 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