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9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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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용리 마을 유래와 동네 인물, 그리고 보호수 해송
왕곡 복용리는 2개의 구가 있는데 제1구는 용연(龍淵)마을로서 용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보호수가 있는 마을은 곰솔과 향나무가 길 건너 마주 보고 있는
제2구 신동산(新洞山)마을이에요. 신동산이라고 더 알려졌지만, 흥복마을이라고도 합니다.
노안면 학산5리에도 신동산마을이 있으니까 차별성을 두어 여기에선 흥복마을을 주로
사용합니다.
흥복이란 지명이 더 정감이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면 이 마을에 민속신앙이
잘 보존되고 있고 아직도 당산제를 지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보호수 두 그루는
풍수사상과 관련이 있는 비보 차원의 나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200년 전 현풍곽씨와 양천허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때 마을이
형성된 것이지요. 지명유래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을
앞에 비옥한 토지가 있어 새로운 부락이 형성되면서부터 마을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한답니다. 이렇게 기름진 땅을 일구기 위해 이곳에 복룡제라는 저수지를 만들고,
바로 위쪽 동네인 상방리에는 상방제 저수지를 조성했습니다. 상방리는 전편에서 살펴본
천연기념물 516호 호랑가시나무가 있는 곳이에요.
윗동네에서는 나무가 천연기념물 반열에 오르는 경사가 난 반면, 흥복마을에서는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이자 판소리명창인
양암 정광수(본명 정용훈)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그는 조선조 판소리 명창 정창업의
손자이기도 하지요.
정용훈은 1964년 처음으로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를 지정할 때,
‘지자군(持字軍) 대목(방자가 편지 가져가는 부분)’의 보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2003년에 94세로 작고하기까지 많은 상을 받았는데 1983년에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문화훈장)을 수상했지요. 이를 기리기 위하여 마을회관 길 건너편에는 하얀
화강암에 새겨진 ‘흥복마을과 양암 정광수’ 기념비가 건립되었습니다. 동네 입구
큰길가이므로 금방 눈에 띕니다.
이와 반대로 피카레스크 유형의 악동으로 신동산에서 살았던 최한락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조선말 고종 때 살았는데 평양의 봉이 김선달, 서울의 정수동 등과
비견되는 인물로서 여러 에피소드를 남겼군요. 그는 양반에게 무례하게 굴고,
나주목사와 귀신을 쫓아냈다고 꾀를 부리는 등 양반과 권력자를 골탕 먹인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고 합니다.
마을회관 길 건너편에는 200년이 된 보호수 해송이 우뚝 서 있는데 해송으로 인해 그
제5장 천연기념물이 있는 영산강변 하류 아랫동네 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