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5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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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00년으로 추정됩니다. 나무 높이는 5.5m, 뿌리 근처의 줄기 둘레는 1.7m이구요.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7.6m, 남북 방향이 8.4m입니다. 줄기는 지상 1m 쯤의 높이에서 남북
방향으로 갈라졌는데, 북쪽 줄기 둘레는 90㎝, 남쪽 줄기 둘레는 80㎝입니다.
가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수관 모양은 높이와 폭이 비슷한 반구형(半球形)을 이루고
있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수관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보입니다. 나무는 마을
입구의 깨끗한 농가에 접해 있는데 다른 쪽에는 7~8m 거리를 두고 사거리 코너에
‘宣武原從一等功臣羅州吳公得隣紀蹟碑’라고 새겨진 오득린(吳得隣) 장군(1564~1637)의
기적비(紀蹟碑)가 있어요.
‘선무원종일등공신 나주오공득린기적비’라고 읽습니다. ‘선무원종공신’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공신을 말하는데 1605년(선조38년)에 그 공훈을 공식문서로 기록하였습니다.
호랑가시나무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을 도와 출진한 오득린장군의 이야기가
서려 있어요. 그는 전쟁이 나자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모집하고 이순신장군을 찾아가
왜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웠지요. 전쟁후 이 마을에 정착한 오장군이 마을 입구에 심은 것이
지금의 호랑가시나무와 팽나무 군락입니다. 그가 왜 장수목인 은행목과 느티나무를 심지
않고 호랑가시나무를 위주로 심었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없습니다. 그가 심은 당시의
팽나무는 다 사라지고 후계목이 몇 그루 남아 있을 뿐이지만 호랑가시나무를 심은 선택은
참으로 용단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오장군 식목설 유래와 별도로 마을의 풍수지리를 보았을 때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에서
오른쪽 지세가 약하다 하여 마을 입구에 큰 숲을 만들어 비보를 했다는 유래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지금은 호랑가시나무와 팽나무 위주의 약 20그루만이 작은 숲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하간 이 나무는 오득린장군이 마을에 정착하며 심은 식재 유래와 마을의 기운을
돋우는 풍수적 의미와 생활양식을 보여주고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어요. 하여
자연유산으로서 천연기념물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지요.
가을에 붉은 열매가 열리면 나무의 수관을 반으로 갈라 남쪽만 열매가 잔뜩 달린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호랑가시나무는 암수가 구분되는데 마을 사람의 전언처럼,
오장군이 암수 두 그루를 함께 심어 일부러 연리목(連理木)을 만들었으니까 가능하겠지요.
연리목의 전설에 의문이 들어 임학자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지만, 너무 과학적인 사실만
따지고 들면 재미가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지요.
하여간 연리목은 남녀간의 사랑을 상징함과 동시에 좋은 일과 화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부간은 물론 마을 사람들이 의좋게 살아가라는 장군의 깊은 뜻이 있을
거예요. 오장군이 이 나무를 선택한 것은 용단이라고 규정한 것은 오늘날 국제관광의
대세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도 찾아오게 만들 수 있는 나주의 대표 문화생태관광자원이
제5장 천연기념물이 있는 영산강변 하류 아랫동네 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