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7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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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 석천리는 3개의 구가 있는데 가장 북쪽편에 있는 제1구의 석촌마을은 400년전
            설립된 마을이지요. 마을 형성은 진주강씨가 인근 영암군 시종면에서 살다가 이곳에
            정착할 때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400년간 이곳에 거주하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군요.
            마을 앞에 심어진 고목이 된 감나무는 그때 당시 심어진 나무라고 합니다.
               이 감나무는 참으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석천경로당과 정자가

            옆에 위치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무에 출입자들의 사랑스런 손길이 자주 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 동네라도 정자목과 당산목은 겸하니까 사람들은 늘 옆에 있지만, 이곳
            감나무의 아담한 화단처럼 잘 가꾸는 곳은 확인하지 못하였으니까요. 감나무 주변의
            경계석은 원만하고 둥근 돌을 정성껏 골라 약간 높은 화단을 만들었군요. 꽃잔디, 봉숭아,
            카네이션, 아네모네 등이 화단에서 잡초도 없이 잘 자라고 있으니 그 손길이 아름답습니다.
            주변 길에도 코스모스가 심어진 자료사진을 확인했으니 이곳 석천마을 사람들은 오롯이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감나무 잎은 가을 단풍이
            들기 전까지 건강미가 여여하기 그지없고 그 이파리 표면은 윤택하여 나무가 행복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또한 초여름에 방문했을 때 감꽃도 풍성했습니다. 한번 이 감나무를

            대한 사람이면 가을에 또 와서 어떻게 홍시가 익어가고 있는지 꼭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들만하겠군요.
               이 감나무는 생육조건이 좋고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따뜻이 받아 낮은 수하고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펼쳐지니 수관은 거의 둥그런 구체형을 이루고 있군요. 균형이 잘
            잡힌 나무 가운데 반구형 수관을 가진 나무는 더러 있어도 이처럼 구형을 이룬 감나무는
            자연에서는 거의 있을 성싶지 않군요. 나주미술관의 감나무가 유럽 어느 동산 위 성당의
            첨탑처럼 하늘로 솟았고 운흥사의 속감 감나무도 호리호리한 것과는 완전 딴판입니다.

               감나무 뒤편으로는 크나큰 은행나무와 삼나무가 각각 두 그루 있고 멀구슬나무도
            있으니 삼나무를 제외하면 철따라 나무들도 색상의 향연을 함께 펼칩니다. 삼나무도
            가을이면 일부 잎은 갈색으로 단풍을 드니 완전히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석천마을은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지세가 옥녀탄금형이라 많은 명창들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석천리에는 석천리 고분군(1,2,3,4호)이 있고 감나무 동쪽으로 3분 도보 거리에
            석천사가 있어요. 석천사(石泉寺)는 조계종 소속이지만 반남박씨(潘南朴氏) 종중(宗中)에서
            문중 자손들의 번영과 만복을 위하여 세운 사찰이지요.
               이 마을이 배출한 인물로는 진주강씨 강달주(1892~1946)가 있어요. 그는 한말 의병
            호군대장으로 활동하다가 대구형무소에서 5년형 언도를 받는 등 남도민의 애국정신을

            발휘했답니다. 한말의병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처형당한 호남인은 10여명이 되는데
            강달주같은 사람이 있어 나주에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이 세워지나 봅니다.


                                                     제5장 천연기념물이 있는 영산강변 하류 아랫동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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