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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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南平)은 ‘낮은들’ 또는 ‘쪽들’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이 말은 물이 풍부한 넓은
들을 뜻하기도 하고 중국 복건성 남평을 차용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인 940년에
남평군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남평현 현내 · 저포 · 동촌면에 속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남평)에 “고장의 풍속은 순박하다. 광리역(光里驛)은 현 북쪽 5리,
하천원(蝦川院)은 동쪽 3리에 있다. 성탄(城灘)은 북쪽 3리로, 근원 능성 · 화순현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현 북쪽을 지나 나주 목포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백인걸은 남평현감에 임하여 서산리 앞 개천을 막아 옥토를 만들었고 드들강(지석강,
砥石江)을 막아 전답을 만들어 백성들이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백효민(백인걸의
손자)이 남평현감으로 부임하여 그 둑에 소나무를 심고 조부의 업적을 더욱 발전시켰으니
조손송(祖孫松)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전해집니다.
나주 남평 드들강의 방풍림은 우실의 일종입니다. 우실은 한국민속신앙사전에 따르면
마을 출입구나 풍수적으로 허한 곳에 흙 또는 돌로 담을 쌓거나 수목을 조성하여 외부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도록 마을 주위를 감싼 울타리입니다.
제2장 옛 남평현 일대와 공동혁신도시 주변 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