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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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천리 선동마을은 만호정이 있는 유촌마을 숲정이에서 남서쪽으로 농로를 따라 거의
1km 가면 나타납니다.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을 입구에서 숲정이를 볼 수 있으니
선동마을로 짐작할 수 있지요. 여기 느티나무 보호수는 300살로 숲정이의 대표 정자목인데
덕룡정 정자에 오전 한나절의 그늘을 만들어 주지요.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두 그루
가운데 서쪽의 팽목이 3.3m의 둘레로서 주인공보다 더 넓은 수관을 자랑합니다. 남쪽의
느티나무는 2.5m 둘레로서 남쪽의 강한 햇빛을 가리며 정자를 포근하게 감싸주지요. 더
남쪽으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도 거목 팽나무(둘레 2.2m)가 직접 정자에 그늘을 만들어
주지는 않지만, 함께 모여 숲정이의 정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숲 사이에는 수세가 수려한
무궁화 한 그루도 있는데 한 주민은 그것도 마을의 자랑거리라고 하더군요.
봉황면은 400m의 덕룡산이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형국인데 철천리는 산기슭에
위치하지요. 그래서 만호정에서 찾아오는 길은 남북으로 뻗은 산을 따라 좌측으로
산자락을 보며 이동하는 농로가 됩니다. 좌측으로 포근한 덕룡산을 끼고 선동마을을 찾아
시골길을 걷는다면 산록에 위치한 정경이 너무나 목가적으로 보인답니다.
덕룡산 자락에 위치한 선동마을은 마을 앞에 철천리 앞들이라는 평야가 발달되어
있는데 옛날에는 큰 성이 위치하여 거성동이라 하였다지요. 현재 확인된 바로는 16세기
말경에 김해김씨(金海金氏)와 제주양씨(濟州陽氏)가 처음 마을의 터를 이루었다고 해요.
선동의 지명유래를 살펴보면, 대체로 마을 주민의 상반된 견해에 의해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마을의 전체 지형이 배의 형국이라 ‘선동(船洞)’이라 했다는 것이며,
마을 입구에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솟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솟대가 배의 돛대였다고
전하는 말도 있다지요. 약간 다른 버전으로는 선동마을 자체를 큰 배로 보고 마을 앞의 논
가운데 있는 조그만 야산을 작은 배로 보는 지형적 특징이 선동의 유래라는 설입니다.
약간 다른 유래로는, 옛날 배가 선동마을 앞까지 들어와 선창가라는 의미에서
‘선동(船洞)’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마을 앞에 있었다는 4기의 입석은 옛날 배를 매던
자리로 보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본답니다. 이러한 사례는 영산강이 고대에 거의 내해 역할을
했던 영암, 함평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요. 하여간 두 가지 설이 모두 배와 관련이 되는
지명유래이지만, 확실한 기록이 없어 어느 것이 유력한지 알기 힘들지요. 다만 옛날 육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로 올라갈수록 봉황천을 통하여 영산강으로 연결되고, 다시 바닷길과
연결되었을 선동마을이 철천리에서 먼저 발전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동마을의 큰 자랑거리는 마을 앞을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인데 선동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나긴 세월을 함께해온 이 나무는 그 자태만으로도 위풍당당하여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지금은 비록 수세가 주변의 나무에 미치지 못하지만 굵기에서 그 연륜과
역사를 읽어낼 수 있어요. 이 나무에서 당산제를 모시고 있는데 정월 14일 오후 3~4시경에
제4장 봉황의 동네, 그리고 나주호의 동네 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