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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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신과 불가분한 관계가 있지요.
정가신(1244~1298)은 고려말 충신이요, 문장가요, 팍스 몽골리카라는 대몽고제국의
국제통이요, 고려의 개혁가였습니다. 그의 호가 설재이니 설재서원은 정가신을 기리는
서원입니다.
전남 문화재자료 93호인 설재서원은 괄목한 비자나무 외에도 거목 은행나무와 잣나무
각각 두 그루, 그리고 동백나무 등이 있고 뒤쪽으로 이어진 야산에는 하늘 높이 솟은 붉은
송림이 있어 운치를 더해 줍니다.
영모재는 설재 정가신을 배향하기 위해 숙종 14년(1688) 노안면 금안동에 최초로
창건되었어요. 그런데 경종 3년(1723)에 노안면 금안동에서 영평리 영안마을로 옮겨
신장(申檣, 1381~1433) 등을 추가로 배향했는데 신장은 신숙주의 아버지입니다.
설재는 원제국시대에 유능한 외교관으로 활동했는데 고려 왕세자의 스승으로서
원나라에 수행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당시 그 유명한 제국의 쿠빌라이(원제국 세조)에게
총명함을 인정받아 자문했었고 다음 황제인 성종에게서도 총애를 받았답니다.
그리하여 성종은 설재를 붙들어 두고 싶었지만, 설재의 고향을 그리는 사향시(思鄕詩)에
감복하여 마지못해 환국을 허락했지요.
해동의 남쪽에 금성산이 있고 海東南有錦城山
산아래 내가 살던 초가삼간 있네 山下吾蘆草數間
골목의 버들과 정원의 복숭아는 내 손으로 심었으니 巷柳園桃親手種
봄이 오면 응당 주인이 귀환하길 기다리리 春來應待主人還
참으로 눈물겨운 고국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성종은 금안장과 백마를 하사하여
귀국하게 했으니 그야말로 금의환향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인근에는
경현서원과 월정서원이 있어도 설재서원이 단연 으뜸이니 찾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설재가 태어난 나주 동강의 ‘시중’ 마을은 그의 벼슬에서 유래했고 노안의 ‘금안’ 또한
그가 귀국길에 말안장에 앉았던 금안장에서 유래합니다. 쌍계정도 정가신이 세웠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렇게 원제국시대에 원나라의 수도에서 활약했고 국제정세에 밝았던 대단한
나주인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고 이것은 비자나무에 그대로 투영되지
않았을까 상상할 수 있지요.
설재가 설령 비자나무를 심지는 않았더라도 그의 생존시에 나무도 유년이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둘의 관계에 합당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래서인지 설재서원의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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